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코마다 노리히로 (문단 편집)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 [[파일:external/www.jiji.com/nar089-jlp00541982.jpg]] 요코하마로 이적한 첫해인 1994년, 개막 초엔 3번타자로 뛰며 호성적을 남겼지만, 갈수로 점점 성적이 저하하면서 중반부터는 6번 타자로 주로 출전하게 된다. 성적은 타율 .284, 13홈런 68타점이었으며 리그 최다 2루타(33개)를 기록했지만 반면 리그 최다 병살타(29개)를 기록하기도 했다. 요코하마에 이적한 후론 주로 2루타를 양산하는 2루타머신으로써 활약하게 된다. 그 후 1995년엔 타율은 .289로 살짝 올랐으나 6홈런 66타점을 기록하며 파워가 하락하여 홈런 갯수가 심하게 낮아지게 된다. 이후 발을 크게 올리는 타격폼을 때때로 시험해 보게 된다. 1996년엔 5,6월쯤까지 좋은 기세를 보이며 이적후 첫 3할 타율이 기대되었으나, 후반기 들어 실속을 거듭하며 결국 타율 3할에 딱 1리 모자라는 타율 .299에 그쳤다. 대신 후반기에 배트를 눕히는 방식으로 타격폼을 개조하며 10홈런을 기록. 다시 두 자릿수 홈런을 날렸고 이해 8월 22일 [[도쿄 돔]]에서 열린 친정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시합에서 [[만루 홈런]]을 날리면서 [[센트럴리그]] 전 구단에게 [[만루 홈런]]을 빼앗는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근데 타점은 63점으로 더 떨어졌다. 1997년엔 주로 5번 타자로 출장. 전년도보다 더 오른 타율 .308, 12홈런 86타점을 기록하며 5년만에 3할 타율을 달성. 타점도 개인최다 기록을 찍었다. 그 후 이듬해인 1998년, 새로 취임한 [[곤도 히로시]] 감독 휘하에서 머신건 타선[* 당시 요코하마 타선은 [[이시이 타쿠로]] - [[하루 토시오]]의 [[호타준족]] [[리드오프]], [[스즈키 타카노리]] - [[로버트 로즈]] - 코마다 노리히로의 강력한 타력을 지닌 [[중심타선]], 그 뒤를 받치는 [[사에키 타카히로]], [[나카네 히토시]], [[타니시게 모토노부]], [[신도 타츠야]] 등의 튼실한 타격력을 갖춘 [[하위타선]] 등의 좋은 타자들이 포진해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3할 초중반대의 고타율을 노릴 수 있는 컨택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한 시즌 10여개 언저리의 홈런을 날릴 수 있는 적당한 장타력과 단타, 2루타 머신으로써의 연타력까지 지닌 교타자들이었으며, 이 타자들이 단타, 2루타를 머신건(기관총)처럼 연타로 날리며 상대팀을 떡실신시키는 것이 당시 요코하마의 공격력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1997~2000년까지 센트럴리그 수위타자(2000년 수위타자는 위의 중심멤버보다는 뒷 세대인 재일교포 스위치 히터 [[긴조 다쓰히코]]였다.)가 모두 요코하마에서 배출된 것은 당시 요코하마 타선의 특징을 가장 잘 알 수 있던 일화. 자세한 설명은 [[http://kkjzato.egloos.com/1946653|참고]]]의 주축 5번 타자 겸 주장으로 활약하며 타격성적은 시즌 막판 부진에 빠지면서 타율 .281, 9홈런 81타점으로 전년보다 하락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만루의 사나이답게 만루 상황 등 찬스 때 좋은 활약을 펼치며 81타점을 기록, 팀의 38년 만의 2번째 [[센트럴리그]] 우승에 대공헌했고 본인도 이해 생애 유일의 [[베스트나인]]을 수상하게 된다. 일본시리즈에선 4차전까지 시즌 막판의 부진이 계속되며 고작 2안타로 부진했지만 5차전에서 만루 적시타를 포함한 4안타 5타점으로 대활약하며 부진을 벗는데 성공, 6차전에서도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결정지는 2타점 적시 2루타를 날리며 이 해 시즌과 마찬가지로 팀의 38년 만의 2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에 대공헌하며 [[일본시리즈 우수선수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시즌오프 때 야구교실에서 부상을 당하여 수술을 받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1999년에도 마찬가지로 타율 .291, 9홈런 71타점과 25시합 연속안타, 12년 연속 100안타의 좋은 성적을 남겼지만[* 하지만 이 해 팀 타선이 '''타율 .294'''란 무시무시한 성적을 기록하는 바람에 .294보다 더 낮은 타율을 기록한 코마다가 저조한 성적을 기록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1993년 시즌 말부터 이어진 739시합 연속 출장이 끊기며[* 요코하마 시절만 포함하면 딱 1시합을 뺀 738시합인데, 이 기록은 구단사상 최다 연속출장기록이다.] 2번째로 연속출장 기록이 끊기는 일을 맛보기도 한다. 그후 2000년, 대망의 2000안타까지 불과 73안타만 남은 상황이 되었으나, 수뇌진과의 불화 등으로 인해 성적부진에 빠진다.[* 결국 이해 규정타석 만족에 실패하며 연속기록이 끊긴다. 마찬가지로 골든글러브 수상에도 실패하여 연속기록이 끊긴다. 이 와중에 대타 기용 문제 등으로 격분해 경기도중 팀을 이탈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때는 2000안타 달성을 그만두고 바로 은퇴를 하는 것까지 고려할 정도였으나, 은사였던 [[오 사다하루]]의 수필 편지를 받고 개심하여 선수생활을 지속, 결국 9월 6일 대망의 2000안타를 달성하며 [[명구회]]에 들어간다. 그 후 구단 측에서 은퇴를 권고했으나 거부하여, 결국 시즌 말 [[전력외통보]]를 받는다. 전력외통보를 받은 후 현역생활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으나, 그를 부르는 구단은 없었고, 결국 이듬해인 2001년 1월 은퇴를 선언하며[* 하지만 현역생활 지속에 대한 욕심은 여전히 남아 있었기에, 은퇴선언 기자회견에서도 "1주일 후에 (선수로) 뛰어주지 않겠냐고 (어느 구단에서라도) 부르면 그렇게 하겠다" 라고 말하며 그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부르는 구단은 여전히 없었다.] 현역 생활을 마감한다. 코마다의 통산 성적은 아래와 같다. || 출장시합 || 2063 || || 타석 - 타수 || 7598 - 6941 || || 득점 || 810 || || 안타 || 2006 || || 2루타 || 357(통산 34위) || || 3루타 || 27 || || 홈런 || 195 || || 타점 || 953 || || 도루 - 도루사 || 35 - 35(통산성공률 50%) || || 희생타 || 28 || || 희생플라이 || 47 || || 사사구 - 삼진 || 582 - 1113 || || 병살타 || 229(통산 11위[* 오오시마 야스노리, 코다마 하루토시와 공동]) || || 타율 || .289 || || 출루율 || .342 || || 장타율 || .433 || || 만루 상황 성적 || 타율 .332, 13홈런(통산 5위), 200타점 || || 베스트나인 수상 || 1회[* 1998년(1루수 부문)] || || 골든글러브 수상 || 10회[* 1989~1991, 1993~1999년(전부 1루수 부문)] || || 일본시리즈 타이틀 || 1989년 MVP, 1998년 우수선수상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